부산 망미동 고려제강 수영공장은 복합문화공간 변신중
지난해 부산비엔날레 개최하자 17만2000여명 다녀가
폐공장 개조해 전시·공연장,중고서점,도서관 등 갖춰
“연말 완공되면 부산의 새로운 문화예술 명소될 것”
낮은 언덕길을 따라 부산 수영강 인근의 망미동 후미진 주택단지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F1963' 얘기다. 1963은 고려제강㈜ 수영공장이 건립된 해, F는 공장(Factory)이란 뜻이다. 공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주변은 논밭이었다. 고려제강은 이곳에서 45년간 와이어로프(쇠줄)를 생산했으나 2008년 6월 생산시설을 양산으로 이전한 뒤 사실상 방치해왔다.
F1963 옆에는 2013년 건립한 고려제강 본사 건물(주차장 포함), 전시·야외 공연장과 홍보관 등을 갖춘 고려제강 기념관(Kiswire Center)이 있다. F1963과 고려제강 본사 등을 포함한 전체 부지면적은 6만㎡에 이른다.
지난 6일 오전 이곳을 찾았다. 입구 도로를 따라 들어가자 왼편으로 조성 중인 푸른 대나무 숲이 나타난다. 가늘면서 유연하고 강인한 와이어의 속성을 닮은 대나무로 꾸민 ‘소리길’이다. 이어 검은색 건물에 푸른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고 있는 고려제강 본사 건물이 있다.
F1963의 부지 면적은 총 8621㎡. 이 공장 건물에는 고려제강이 130억원을 들여 개보수한 뒤 유치한 커피 전문점(테라로사), 체코 전통 맥주점(프라하993), 전통 막걸리 등을 파는 한식점(복순도가) 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오전인데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 옆 폐공장 건물의 한가운데에는 F1963의 중정(中庭·건물 가운데 뜰)이 있다. 전시·공연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천장이 뚫려 있다. 중정 계단 아래에는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나온,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붙은 돌더미가 작품 처럼 전시돼 있다. 노동자들이 힘들여 공장을 지으면서 기초공사에 사용한 돌더미다.
커피점으로 들어서자 공장 기계 등으로 만든 설치작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점 내부 바닥과 테이블, 조리대는 공장에서 나온 철판과 콘크리트를 재활용했다. 높고 넓은 천장 아래 지붕 골조는 옛 모습 그대로다. 공장 건물의 원형을 보전하면서 공장 기물을 작품처럼 곳곳에 꾸며 놓았다. 고색창연한 느낌이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서점(YES24)이 있다. 오는 24일 오픈 예정이어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점 가운데에는 원고지 형상의 디지털 작품이 있다. 벽면에는 1945년 이후 한국 출판역사를 인쇄기기와 활자, 베스트 셀러 등으로 표현한 작품이 조성되고 있다. 이 서점은 개인이 소장한 중고 서적도 내다팔 수 있다. 최수영 부산문화재단 큐레이터는 “책은 지식의 문, 지혜의 문, 미래의 문”이라며 “개점하면 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점을 나와 공장 건물 사이를 지나면 원예점이 나온다. 녹색의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정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곳을 지나면 부산시가 F1963의 8621㎡ 가운데 2000㎡를 20년간 무상임대 사용키로 한 전시·공연장. 32억원을 들여 지난 7월 공사에 들어가 연말까지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내부의 긴 공장 모습 그대로를 리모델링해 바닥에서 무대가 올라오는 유압식 무대(11mX13m)와 조명시설, 800석의 공연장을 설치하고 있다. 공연장은 전시장으로, 전시장은 공연장으로 쉽게 바꿀 수 있게 꾸며지는 것이 특징이다.
도서관(F1963 라이브러리)도 내년 상반기 개관 예정으로 공사 중이다. 예술·디자인·건축분야에 특화된 도서관이다. 클래식 CD와 LP음악 감상을 할 수 있고 인문학 강좌, 소규모 음악회도 열 수 있게 만든다. F1963 조성을 총괄 기획하는 강재영씨는 “F1963을 전시·공연을 보고 책을 읽고, 커피·음료를 마시며 힐링 할 수 있는 부산의 문화예술 명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 F1963과 다리로 연결된 고려제강 본사 건물과 기념관도 작품이나 다름없다. 본사 건물은 최근 부산시의 건축문화상을 받았을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답다. 전시장에서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광안리 앞바다와 광안대교 모형의 수변 정원이 눈 아래 들어온다. 광안대교에 사용된 모든 와이어가 고려제강 제품으로 사용된 것을 기념하는 정원이다. 전시장 등은 와이어가 떠받치고 있다.
이날 만난 시민 송조흠(52)씨는 “커피를 좋아해 아내와 함께 찾았다”며 “부산에 이렇게 쉬면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새로 생기니 무척 반갑다”고 말했다.F1963의 운영은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고려제강의 실무진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맡는다. 고려제강은 하드웨어 조성을 주도하고, 시는 행정·예산지원과 행사유치, 부산문화재단은 콘텐트 개발·제공을 맡는다.
부산시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오픈 스퀘어, 사운드 아트 전시, 베토벤 페스티벌 같은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연말에는 F1963 전시·공연장을 개관할 예정이다. 또 내년 10월 이곳에 세계 인문학포럼 개최를 추진하고 타이완 가오슝 시와 협의해 예술인 레지던시(주거+창작활동 공간)로 활용할 계획이다.
백정림 부산시 문화예술과장은 “최근 세계인문학 포럼을 유치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초청한 결과 전시·공연시설과 고려제강 본사 옥상 등을 둘러보고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며 “F1963은 새로운 부산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